오늘 우리는 우리의 조상과 선배들이 “천재(天災)는 불가항력(不可抗力), 농사는 하늘이 지어주는 것”이라 체념하며 무기력(無氣力) 속에 천기(天氣)를 바라보며 요행을 바라던 수치스러운 유산(遺産)을 청산할 때가 왔다는 것을 인식해야 하겠다.
한해대책에 관해 치사에서 (1968.8.26.)
우리 나라의 산이 선진국가와 같이 푸르고 울창하게 되었을 때 우리도 그런 나라만큼 잘 살수 있다고 나는 확신하고 있다.
‘식목일’ 치사에서 (1969.4.5.)
우리가 이룩해야 할 근대화는 결코 공업입국(工業立國) 또는 농업입국(農業立國)만으로는 기대할 수 없으며, 공업과 농업과 수산업이 동시병진(同時倂進)해서 균형 있게 발전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농공수산업(農工水産業)이 삼위일체(三位一體)가 되어 상호보완(相互補完) 관계 속에 발전할 때, 우리의 근대화 작업의 도정(道程)은 그만큼 단축된다.
수협중앙회 정기총회 치사에서 (1967.2.27.)
우리가 체험으로 배운 유일한 교육이 있다면 그것은 한 마디로 “하면 된다.”, “우리도 할 수 있는 실력을 쌓았다.”는 우리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라 하겠다
서울대학교 졸업식 치사에서 (1969.2.26.)
우리는 가난한 조국의 현실을 우리들 조상의 잘못이라고 원망한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우리의 조상을 원망하기에 앞서 우리들 후손들에게 우리들 자신이 원망 듣는 조상이 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해외공관장에게 보내는 친서에서 (1967.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