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에게는 많은 문화유산(文化遺産)이 있지만, 우리의 글인 한글이야말로 민족문화의 큰 분수령(分水嶺)을 이루는 찬연한 위업(偉業)이요, 자랑이라 아니 할 수 없다.
한글날 담화문에서 (1971.10.9.)
우리의 생존과 안전을 위해서 열강(列强)의 공동보장(共同保障)을 받아야 한다는 비굴한 자세가 과거에 어떠한 우환(憂患)을 자초했는가를 생각할 때 정신사적(精神史的)으로 아직 말끔히 가시지 못한 이 끈질긴 사대주의(事大主義)와 환상적 대응책은 70년대의 한국 민족주의(韓國 民族主義)가 가장 경계해야 할 가장 위험한 병폐다.
서울대학교 졸업식 치사에서(1971.2.26)
이제 우리는 절망 속에서 희망을 되찾았고, 체념 속에서 의욕을 일깨웠으며, 불안 속에서 자신을 얻었다. 우리의 이 희망, 이 의욕, 그리고 이 자신이야말로 민족의 생동(生動)하는 정신자원인 것이며, 바로 여기에 조국의 앞날을 밝히는 빛이 있고, 길이 있는 것이다.
제7대 대통령후보 지명수락에서 (1971.3.17.)
자양분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비옥(肥沃)한 대지(大地) 위에 아름다운 꽃이 피고 풍성한 열매가 열리듯이, 자주(自主), 자립(自立), 자조(自助)의 정신이 넘쳐흐르는 민족저력(民族底力)의 토대 위에 반드시 만세(萬世)에 길이 빛날 우람한 중흥의 금자탑(金字塔)이 세워지리라는 것을 나는 굳게 확신하고 있다.
박정희 지음 『국가와 혁명과 나』에서 (1971.3.1.)
주체적 민족사관이 없는 사람을 우리는 국적(國籍)이 없는 정신적인 방랑아(放浪兒)라고 한다. 불행히도 과거 우리 사회에는 ‘국적 없는 정신적 방랑아’가 상당히 많았고, 여기에 우리 사회의 문제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연두기자회견에서 (1973.1.12.)